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임금 수준을 억지로 끌어올리려 할 경우 일어나는 일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연정이든 소연정이든 연정을 해야만 한다는 뜻은 알겠고, 그럴 때 상대를 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선의를 가진 존재로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렇게 해서 야당에서도 기꺼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겠다는 자세가 됐다고 치면, 그들과 손을 잡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제 얘기해야 한다. 설마 보수세력의 선의를 인정한다고 이제 다 죽어가는 낙수이론을 다시 들고 나오거나, 노동시장 유연화를 창의적으로 강화시킨다거나, 압박을 통한 북핵 해결에 손을 들어주지 않기만을 빈다. 이게 그에 대해 내가 기대하는 마지막 '선의'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와 유연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불안'과 '불편함'의 유무에서 엇갈렸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해고와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적었고,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는 불안이 컸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고, 경직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불편했다. 그게 내가 체험한 전부다. 그리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근대화 이후 머슴도, 주종관계도 없어졌지만, 노동력 착취나 임금체불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근로자는 사실상 노예'라는 요지의 발언을 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최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생계비조차 벌지 못하고, 그마저도 떼이기 일쑤. 권익을 보호해줄 결사체도 없고, 정부의 관리 감독 역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현실. 이것이 2015년 노동절에 돌아본 한국 노동의 현 주소다.
정 전 의원의 발언 안에는 적확한 인식도 있고, 옳은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는 전혀 동의가 되지 않는다. 먼저 "참여정부 시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리고 죽었고 비정규직이 됐다"는 발언에 대해 평가해 보자. 정 전 의원의 발언이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표피적 현상인식은 매우 위험하다.